복지뉴스 콜벤 기사들, 전동휠체어 부당 요금 여전
- 날짜
- 2009-10-15 09:41
- 조회수
- 2,231
규정대로 요금 받기로 약속했으나 시정 안돼
예약제로 운영되는 장애인콜택시도 불합리
지난번 다뤘던 콜벤 요금 문제와 장애인 콜택시 문제를 다시 꺼내려 한다. 이 주제를 다시 찾게 된 계기는 지난 7월경 콜벤 요금 문제로 글을 올렸을 때 많은 분들의 관심도 많았지만 콜벤 측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고 연락이 와서 청주에 있는 H콜벤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중심적인 내용은 이렇다. “인터넷에 글 올라온 것 잘 보았다. 정말 우리 기사들이 성추행의 행동을 했으며 요금을 그렇게 많이 받았냐”는 말이었다. 그래서 모두 다 사실이고 성추행을 느끼게 한 기사 분은 솔직히 5년 정도 된 일이라 몇 호차인지 기억을 못하겠다고 말을 했더니 “그럼 이미 지나간 일이고 요금은 앞으로는 미터기 요금으로만 정확히 받겠음 규정을 정해 놓을 터이니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내려달라”고 요구를 했다.
그리하여 성추행 내용을 조금 고치고 콜벤 이름을 예명으로 바꾸어서 글을 수정을 하였다. 글을 수정을 한 이유는 그 일들이 거짓이라 수정을 한 것 아니다. 같은 사람으로서 서로 약속을 한 것이기에 그 분을 믿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나의 큰 실수였다.
2009년 10월 9일 퇴근을 기분 좋게 하고 주말이라 친구들과 저녁 7시경 약속을 잡았다. 청주 장애인콜택시(해피콜)에 먼저 차를 탈 수 있냐고 전화를 걸어 보았다. 너무 대기자가 많아 탈 수 없다고 하여 오래간만에 H콜벤을 타기로 마음을 먹고 전화를 걸어 차를 불렀다. 아니나 다를까 차에 타자마자 기사분 하시는 말 “얼마에 다녔어요”라고 물으시길래 위의 말처럼 “미터기로 다녀요”라고 대답을 했다. 콜벤 기사분께서 하시는 말이 “어떻게 전동휠체어를 싣고 미터기요금만 받아”라고 하길래 “회장님과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런 규정 못 들으셨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H콜벤 회장이라고 통화를 하더니 그런 적 없다고 요금 받을 만큼 받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 사이에 목적지의 도착을 하여 미터기 요금만 내고 돌아서 버렸다. 그 후 H콜벤 회장과 통화를 했다.
신분을 밝히고 조금 전에 20호차를 탄 사람이기도 하고 7월경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다. 20호차 아저씨께서 회장님께서 규정으로 정하겠다고 한 미터기 내용을 모르시더라, 또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시던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며 저하고 약속을 이런 식으로 우습게 생각하신다면 저도 이제는 참지 않겠다, 글 수정했던 것 다시 원상태로 복구 해놓겠다고 했더니 H콜벤 회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럼 그렇게 해라! 그 많은 사람들한테 얘기 못할 수도 있지. 그 것을 가지고 날 협박하느냐”고 하면서 안 태우면 된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참 돈이 많아야지만 무시당하지 않고 떳떳하게 다닐 수 있단 말인가? 참 슬프고 가슴 아픈 현실이다. 휠체어는 다리이다. 살이 쩌서 몸이 무거운 사람은 콜벤 요금 더 내야하나? 이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다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더 무거울 뿐이다. 휠체어는 다리이며 물건이 아니라는 점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오늘의 주제 두 번째 장애인은 예지력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2009년 7월부터 충북 청주시에도 장애인 콜택시(해피콜)이 생겼다. 내가 수동휠체어만 10년이 넘게 타다가 전동휠체어를 탈 때의 그 기분과 같았다. 부푼 설렘과 기대감, 두근거림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매번 어디 움직일 때마다 타 단체에 미리 예약을 해야지만 편안하게 갈 수 있었는데 콜택시가 생겨서 너무 좋았다.
물론 처음에는 여러 가지로 적응할 일이 많아서 콜택시에서 예약을 받아 시범 운행을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아직도 예약이 90% 정도 되고 10% 정도 밖에 안 되는 즉시콜. 참 형편없다. 예약을 원한다면 뭐하러 콜택시가 필요하겠는가? 정말 1분 1초의 앞도 알 수 없다는 상황에서 오늘 밤에 우리 애기가 아플 것이라는 것을 예지력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제도가 생기는 것 참 당연하기도 하면서 사실은 참 감사하고 좋은 일이다. 제발 규정상 정도를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날이 오는 그날까지, 투쟁을 외칠 것이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장애인콜택시도 불합리
지난번 다뤘던 콜벤 요금 문제와 장애인 콜택시 문제를 다시 꺼내려 한다. 이 주제를 다시 찾게 된 계기는 지난 7월경 콜벤 요금 문제로 글을 올렸을 때 많은 분들의 관심도 많았지만 콜벤 측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고 연락이 와서 청주에 있는 H콜벤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중심적인 내용은 이렇다. “인터넷에 글 올라온 것 잘 보았다. 정말 우리 기사들이 성추행의 행동을 했으며 요금을 그렇게 많이 받았냐”는 말이었다. 그래서 모두 다 사실이고 성추행을 느끼게 한 기사 분은 솔직히 5년 정도 된 일이라 몇 호차인지 기억을 못하겠다고 말을 했더니 “그럼 이미 지나간 일이고 요금은 앞으로는 미터기 요금으로만 정확히 받겠음 규정을 정해 놓을 터이니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내려달라”고 요구를 했다.
그리하여 성추행 내용을 조금 고치고 콜벤 이름을 예명으로 바꾸어서 글을 수정을 하였다. 글을 수정을 한 이유는 그 일들이 거짓이라 수정을 한 것 아니다. 같은 사람으로서 서로 약속을 한 것이기에 그 분을 믿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나의 큰 실수였다.
2009년 10월 9일 퇴근을 기분 좋게 하고 주말이라 친구들과 저녁 7시경 약속을 잡았다. 청주 장애인콜택시(해피콜)에 먼저 차를 탈 수 있냐고 전화를 걸어 보았다. 너무 대기자가 많아 탈 수 없다고 하여 오래간만에 H콜벤을 타기로 마음을 먹고 전화를 걸어 차를 불렀다. 아니나 다를까 차에 타자마자 기사분 하시는 말 “얼마에 다녔어요”라고 물으시길래 위의 말처럼 “미터기로 다녀요”라고 대답을 했다. 콜벤 기사분께서 하시는 말이 “어떻게 전동휠체어를 싣고 미터기요금만 받아”라고 하길래 “회장님과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런 규정 못 들으셨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H콜벤 회장이라고 통화를 하더니 그런 적 없다고 요금 받을 만큼 받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 사이에 목적지의 도착을 하여 미터기 요금만 내고 돌아서 버렸다. 그 후 H콜벤 회장과 통화를 했다.
신분을 밝히고 조금 전에 20호차를 탄 사람이기도 하고 7월경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다. 20호차 아저씨께서 회장님께서 규정으로 정하겠다고 한 미터기 내용을 모르시더라, 또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시던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며 저하고 약속을 이런 식으로 우습게 생각하신다면 저도 이제는 참지 않겠다, 글 수정했던 것 다시 원상태로 복구 해놓겠다고 했더니 H콜벤 회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럼 그렇게 해라! 그 많은 사람들한테 얘기 못할 수도 있지. 그 것을 가지고 날 협박하느냐”고 하면서 안 태우면 된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참 돈이 많아야지만 무시당하지 않고 떳떳하게 다닐 수 있단 말인가? 참 슬프고 가슴 아픈 현실이다. 휠체어는 다리이다. 살이 쩌서 몸이 무거운 사람은 콜벤 요금 더 내야하나? 이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다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더 무거울 뿐이다. 휠체어는 다리이며 물건이 아니라는 점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오늘의 주제 두 번째 장애인은 예지력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2009년 7월부터 충북 청주시에도 장애인 콜택시(해피콜)이 생겼다. 내가 수동휠체어만 10년이 넘게 타다가 전동휠체어를 탈 때의 그 기분과 같았다. 부푼 설렘과 기대감, 두근거림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매번 어디 움직일 때마다 타 단체에 미리 예약을 해야지만 편안하게 갈 수 있었는데 콜택시가 생겨서 너무 좋았다.
물론 처음에는 여러 가지로 적응할 일이 많아서 콜택시에서 예약을 받아 시범 운행을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아직도 예약이 90% 정도 되고 10% 정도 밖에 안 되는 즉시콜. 참 형편없다. 예약을 원한다면 뭐하러 콜택시가 필요하겠는가? 정말 1분 1초의 앞도 알 수 없다는 상황에서 오늘 밤에 우리 애기가 아플 것이라는 것을 예지력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제도가 생기는 것 참 당연하기도 하면서 사실은 참 감사하고 좋은 일이다. 제발 규정상 정도를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날이 오는 그날까지, 투쟁을 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