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뉴스 '문화'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
- 날짜
- 201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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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장애인문화공간에서 주최하는 ‘장애여성문화활동 향유기_여향’의 첫 번째 강의가 새로 보문동으로 이사 온 장애인극단 판에서 있었다. ‘여향’은 장애·비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이지만 문화강좌는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와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개방했다.
이날의 첫 강의는 문화사회연구소 권경우 기획실장의 ‘신자유주의 시대, 문화를 말한다는 것의 의미’다. 사실 나는 장애인문화공간에서 활동한지도 2년이 약간 넘었지만 ‘문화’에 대한 고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장애인문화에 대한 깊은 고민이 참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화’란 문예 창작과 영화, 연극 등의 공연,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예술 행위 그리고 이것들을 관객의 입장에서 보는(관람) 것이고 장애인문화는 비장애인이 행하는 창조적 작업과 예술행위에 있어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관객의 입장애서도 아무런 제약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가 ‘문화’와 ‘장애인문화’를 생각하는 전부였다.
강의 첫 서두부터 나의 무지함을 부수기 시작했다. 강사가 말하는 문화는 내가 가진 생각을 뛰어 넘었다. 문화는 단순히 사람들이 가진 상상력을 글로, 그림 또는 조각으로, 영상에 담는 작업 등과 같은 예술 행위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 전체를 포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와 사람이 일상에서 행하는 행위들이 모두 문화에 속한다. 강사는 몇 년 전, TV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환상의 커플’의 여주인공 ‘나상실’이 자주 사용하는 ‘꼬라지’란 단어로 문화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했다.
여주인공 나상실은 항상 ‘꼬라지하고는...’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꼬라지가 그게 뭐야?’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니 꼬라지가 그게 뭐니?’하고 안쓰러운 말을 하기도 한다. 바로 우리 삶에 꼬라지 즉, ‘꼴’이 문화라는 것이다. 삶의 꼴이 어떤가에 따라 문화적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갈린다. 각 사람이 가진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을 먹고 싶다’, ‘어디 놀러 가고 싶다’, ‘축구를 보고 싶다', '야구를 직접 하고 싶다’ 등등 이러한 것들을 실천에 옮기는 것도, 정치문화, 사회문화, 경제문화, 군사문화, 학교문화 등등 모임이 가지는 특성들 또한 문화다. 문화는 굉장히 광범위하고 개별적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설명했다. 예컨대 90년대 이전의 문화에 대한 인식은 강의를 듣기 전의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무언가 특별히 소질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 우리와 같이 예술적이든 문학적이든 소질 없는 사람들은 별개의 것이고 그것을 관객으로 관람하는 수준의 것, 그런 것도 등 따시고 배부를 때 해야 하는 것쯤으로 생각했었다. 90년대 이후 문화의 가치 상승(타이타닉 등 헐리웃 영화 한편이 수 만대의 자동차 자동차를 해외에 수출하면서 발생하는 이익을 능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과 함께 인터넷 등 통신기기의 발달로 누구나 문화를 창조하고 선도 할 수 있게 되면서 문화에 대한 자본의 투자가 본격화 된다.
강사는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 문화의 위기를 얘기한다. 자본이 특정 문화에 독점적으로 투자되면서 문화의 다양성이 무너지고 획일화 되는 문제 각 개인 안에 내재된 상상력(강사는 무의식이라 칭했다)을 도태시켜 자본에 길들여진 문화만 답습하는 피폐해진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화, 문화에 대한 빈부격차를 해소하려면 국가가 정책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 문화는 개인 욕구의 발현이기에 국가는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야 한다는 점(정치와 문화의 절합) 문화가 가진 범위성과 파생 되는 일들은 강사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강사는 특별히 장애인문화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문화에 대한 민주적인 절차와 참여보장(문화의 민주주의) 속에서 일상생활의 모든 면과 문화적 관계 속에서 진정한 평등구조가 이루어 질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평등구조 속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이 느끼고 표출할 수 있는 고유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고 그 느낌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스며들게 한다면 굳이 장애인문화를 들먹이지 않아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문화에 대한 관점과 시각들을 다시 한 번 올바로 되짚어주는 강의였다. 아쉬운 점은 참 이해하기 쉽고 내용도 알찬 강의였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적었다는 것이다. 생소한 장소에서 열었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많은 장애인활동가들이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강의들에 대해 관심을 좀 많이 갖고 자기성찰의 기회가 되는 계기가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강의는 다음 주 화요일(22일) 오후 2시, 보문역 근처의 장애인극단 ‘판’에서 ‘장애인문화, 오늘의 현실과 내일의 과제’라는 주제로 열리는데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장애인노래패 ‘시선’에서 활동하는 김정 활동가가 강의를 맡는다. 장애인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날 많이 참여해서 장애인문화의 앞날의 과제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7-06 13:19)
이날의 첫 강의는 문화사회연구소 권경우 기획실장의 ‘신자유주의 시대, 문화를 말한다는 것의 의미’다. 사실 나는 장애인문화공간에서 활동한지도 2년이 약간 넘었지만 ‘문화’에 대한 고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장애인문화에 대한 깊은 고민이 참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화’란 문예 창작과 영화, 연극 등의 공연,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예술 행위 그리고 이것들을 관객의 입장에서 보는(관람) 것이고 장애인문화는 비장애인이 행하는 창조적 작업과 예술행위에 있어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관객의 입장애서도 아무런 제약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가 ‘문화’와 ‘장애인문화’를 생각하는 전부였다.
강의 첫 서두부터 나의 무지함을 부수기 시작했다. 강사가 말하는 문화는 내가 가진 생각을 뛰어 넘었다. 문화는 단순히 사람들이 가진 상상력을 글로, 그림 또는 조각으로, 영상에 담는 작업 등과 같은 예술 행위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 전체를 포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와 사람이 일상에서 행하는 행위들이 모두 문화에 속한다. 강사는 몇 년 전, TV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환상의 커플’의 여주인공 ‘나상실’이 자주 사용하는 ‘꼬라지’란 단어로 문화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설명했다.
여주인공 나상실은 항상 ‘꼬라지하고는...’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꼬라지가 그게 뭐야?’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니 꼬라지가 그게 뭐니?’하고 안쓰러운 말을 하기도 한다. 바로 우리 삶에 꼬라지 즉, ‘꼴’이 문화라는 것이다. 삶의 꼴이 어떤가에 따라 문화적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갈린다. 각 사람이 가진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을 먹고 싶다’, ‘어디 놀러 가고 싶다’, ‘축구를 보고 싶다', '야구를 직접 하고 싶다’ 등등 이러한 것들을 실천에 옮기는 것도, 정치문화, 사회문화, 경제문화, 군사문화, 학교문화 등등 모임이 가지는 특성들 또한 문화다. 문화는 굉장히 광범위하고 개별적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설명했다. 예컨대 90년대 이전의 문화에 대한 인식은 강의를 듣기 전의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무언가 특별히 소질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 우리와 같이 예술적이든 문학적이든 소질 없는 사람들은 별개의 것이고 그것을 관객으로 관람하는 수준의 것, 그런 것도 등 따시고 배부를 때 해야 하는 것쯤으로 생각했었다. 90년대 이후 문화의 가치 상승(타이타닉 등 헐리웃 영화 한편이 수 만대의 자동차 자동차를 해외에 수출하면서 발생하는 이익을 능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과 함께 인터넷 등 통신기기의 발달로 누구나 문화를 창조하고 선도 할 수 있게 되면서 문화에 대한 자본의 투자가 본격화 된다.
강사는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 문화의 위기를 얘기한다. 자본이 특정 문화에 독점적으로 투자되면서 문화의 다양성이 무너지고 획일화 되는 문제 각 개인 안에 내재된 상상력(강사는 무의식이라 칭했다)을 도태시켜 자본에 길들여진 문화만 답습하는 피폐해진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화, 문화에 대한 빈부격차를 해소하려면 국가가 정책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 문화는 개인 욕구의 발현이기에 국가는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야 한다는 점(정치와 문화의 절합) 문화가 가진 범위성과 파생 되는 일들은 강사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강사는 특별히 장애인문화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문화에 대한 민주적인 절차와 참여보장(문화의 민주주의) 속에서 일상생활의 모든 면과 문화적 관계 속에서 진정한 평등구조가 이루어 질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평등구조 속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이 느끼고 표출할 수 있는 고유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고 그 느낌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스며들게 한다면 굳이 장애인문화를 들먹이지 않아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문화에 대한 관점과 시각들을 다시 한 번 올바로 되짚어주는 강의였다. 아쉬운 점은 참 이해하기 쉽고 내용도 알찬 강의였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적었다는 것이다. 생소한 장소에서 열었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많은 장애인활동가들이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강의들에 대해 관심을 좀 많이 갖고 자기성찰의 기회가 되는 계기가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강의는 다음 주 화요일(22일) 오후 2시, 보문역 근처의 장애인극단 ‘판’에서 ‘장애인문화, 오늘의 현실과 내일의 과제’라는 주제로 열리는데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장애인노래패 ‘시선’에서 활동하는 김정 활동가가 강의를 맡는다. 장애인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날 많이 참여해서 장애인문화의 앞날의 과제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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