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뉴스 지금 장난해?
- 날짜
- 2010-01-15 00:00
- 조회수
- 1,005
희망코리아! 그 시작엔 절망있었다
2부: 지금 장난해?
어렵게 연결된 난타강사는 지방에서 꽤 유명한 전통난타팀의 단원 이였다 .
“휠체어를 탔다는 것이 저희들과 뭐가 다르겠어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빛드림 난타팀는 첫 번째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세미나실이나 강의를 목적으로 대관 해주는 곳에 무작정 찾아가 아주 조그만 정말 조그만 악기를 아주 작은 소리로 잠깐만 연습을 하고나서 세미나를 할 것이라고 부연설명을 한 후 사용을 승인받았다
첫 번째 연습 날
미리 선생님과 상견례를 하고서 예술단 내에서 난타를 배울 단원들을 뽑았지만 막상 연습을 시작해보니 문제가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난타 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정유미씨의 장애는 류마티스관절염!
근육이 제대로 그 역할을 못하는데다 통증이 심해서 손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으며 손가락은 북채를 잡을 힘도 없었다.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대표님 유미는 안 돼요. 안될 것 같아요”
나는 모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해보지도 않고 왜 벌써 포기를 해? 가장 어리석은 일이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일이야”
나는 그녀가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사람이 “NO” 라고 했을 때 “OK”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용감한 사람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정유미, 그녀에게서 그 혼을 느낄 수 있었으며 누구보다도 그녀의 마음속에 차오르고 있는 예술에 대한 열정, 그것을 믿었다
나의 설득 끝에 다시 연습이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난타를 연습하는 날만 되면 우리가 대관한 바로 옆 강의실이 비어 있기만을 기도해야 했다. 왜냐면 북 여섯 개가 동시에 울리는 소리는 그야말로 장관이였던 것이다. 다행히 한 달 동안은 그 시간에 다른 강의나 세미나가 잡혀 있지 않아서 연습을 이어 갈수 있었지만 연습 후에 마땅히 북을 보관할 장소가 없었다.
난타북 여섯 개와 북받침 대의 부피는 웬만한 승용차로도 운반하기 어려운 부피여서 매주 연습 때마다 실어 나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는 수없이 연습실 대관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에게 찾아가 한 달 동안만 라면 박스 두 개만 보관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라면 박스 두 개정도의 부피인거 맞죠?”
“아. 네에 그게……. 정확하진 않지만 맞을꺼에요.”
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 이상은 힘들어요. 거기는 저희 청소도구를 넣어 두는 장소거든요.”
“아 네 잘 알겠습니다. ”
그렇게 해서 악기 보관할 장소까지 해결이 됐다. 이제 연습만 잘 하면 되는 것이다. 한주 한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인데 날짜는 총알을 탄 듯 잘도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저. 배은주 씨 계십니까?”
“제가 배은준데요 ”
“저희 센터 창고에 맡겨 놓으신 물건 말인데요. 그게 뭐에요?”
“북이에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북요? 라면 박스 두개만한 크기라고 안하셨나요?”
“근데 그게 북받침 대는 라면박스 크긴데요, 북이... 좀 커요.”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 그럼 지금까지 저희 센터에서 세미나를 한 게 아니라 북을 연습하셨다는 말씀인가요?”
“.....”
“여기는요 악기를 연습하는 곳이 아니고요 강의실이거든요 어쩐지 자꾸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곤 했었는데... 그럼 오늘도 북을 치고 계신건가요?”
“네…….”
( 나도 알거든요. 근데 어떻게 해요? 우리는 편의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모일 수 없는데요)
그러나 한마디 말도 못하고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하는 수없이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연습실을 찾아 나셨다
그러나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스튜디오는 모두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나 2층이었고 대관료 역시 만만치 않았다
종로에 연극연습실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는 곳이 있다고 해서 한달음에 쫓아갔다
“대본 연습은 가능한대요 악기연습을 안 돼요”
답답한 마음에 지역 복지관을 찾았다
“저희들로 할머니 할아버지 장구 좀 가르치려고 해도 주민들이 자꾸 민원을 제기해서 못 가르치고 있어요. 죄송해요”
오죽 답답했는지 하루는 남편이 한마디 했다
“자유로 가다보면 들판이 나오는데 아무도 없어 시골에 비닐하우스치고 거기서 연습하면 소리가 시끄러워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
“지금 장난해? 거기까지 우리가 어떻게 가요?”
답답한 마음에 괜스레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세상을 넓고 여기저기 문화센터도 많은데 정말 우리가 연습할 그 작은 공간하나 없단 말인가?)
“언니! 우리 연습 언제 다시 시작해요?”
“어, 금방 하게 될 거야! 걱정마 연습실 구하고 있어 잘 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한숨과 뻥만 늘어가고 있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7-03 15:56)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7-06 13:20)
2부: 지금 장난해?
어렵게 연결된 난타강사는 지방에서 꽤 유명한 전통난타팀의 단원 이였다 .
“휠체어를 탔다는 것이 저희들과 뭐가 다르겠어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빛드림 난타팀는 첫 번째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세미나실이나 강의를 목적으로 대관 해주는 곳에 무작정 찾아가 아주 조그만 정말 조그만 악기를 아주 작은 소리로 잠깐만 연습을 하고나서 세미나를 할 것이라고 부연설명을 한 후 사용을 승인받았다
첫 번째 연습 날
미리 선생님과 상견례를 하고서 예술단 내에서 난타를 배울 단원들을 뽑았지만 막상 연습을 시작해보니 문제가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난타 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정유미씨의 장애는 류마티스관절염!
근육이 제대로 그 역할을 못하는데다 통증이 심해서 손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으며 손가락은 북채를 잡을 힘도 없었다.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대표님 유미는 안 돼요. 안될 것 같아요”
나는 모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해보지도 않고 왜 벌써 포기를 해? 가장 어리석은 일이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일이야”
나는 그녀가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사람이 “NO” 라고 했을 때 “OK”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용감한 사람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정유미, 그녀에게서 그 혼을 느낄 수 있었으며 누구보다도 그녀의 마음속에 차오르고 있는 예술에 대한 열정, 그것을 믿었다
나의 설득 끝에 다시 연습이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난타를 연습하는 날만 되면 우리가 대관한 바로 옆 강의실이 비어 있기만을 기도해야 했다. 왜냐면 북 여섯 개가 동시에 울리는 소리는 그야말로 장관이였던 것이다. 다행히 한 달 동안은 그 시간에 다른 강의나 세미나가 잡혀 있지 않아서 연습을 이어 갈수 있었지만 연습 후에 마땅히 북을 보관할 장소가 없었다.
난타북 여섯 개와 북받침 대의 부피는 웬만한 승용차로도 운반하기 어려운 부피여서 매주 연습 때마다 실어 나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는 수없이 연습실 대관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에게 찾아가 한 달 동안만 라면 박스 두 개만 보관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라면 박스 두 개정도의 부피인거 맞죠?”
“아. 네에 그게……. 정확하진 않지만 맞을꺼에요.”
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 이상은 힘들어요. 거기는 저희 청소도구를 넣어 두는 장소거든요.”
“아 네 잘 알겠습니다. ”
그렇게 해서 악기 보관할 장소까지 해결이 됐다. 이제 연습만 잘 하면 되는 것이다. 한주 한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인데 날짜는 총알을 탄 듯 잘도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저. 배은주 씨 계십니까?”
“제가 배은준데요 ”
“저희 센터 창고에 맡겨 놓으신 물건 말인데요. 그게 뭐에요?”
“북이에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북요? 라면 박스 두개만한 크기라고 안하셨나요?”
“근데 그게 북받침 대는 라면박스 크긴데요, 북이... 좀 커요.”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 그럼 지금까지 저희 센터에서 세미나를 한 게 아니라 북을 연습하셨다는 말씀인가요?”
“.....”
“여기는요 악기를 연습하는 곳이 아니고요 강의실이거든요 어쩐지 자꾸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곤 했었는데... 그럼 오늘도 북을 치고 계신건가요?”
“네…….”
( 나도 알거든요. 근데 어떻게 해요? 우리는 편의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모일 수 없는데요)
그러나 한마디 말도 못하고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하는 수없이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연습실을 찾아 나셨다
그러나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스튜디오는 모두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나 2층이었고 대관료 역시 만만치 않았다
종로에 연극연습실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는 곳이 있다고 해서 한달음에 쫓아갔다
“대본 연습은 가능한대요 악기연습을 안 돼요”
답답한 마음에 지역 복지관을 찾았다
“저희들로 할머니 할아버지 장구 좀 가르치려고 해도 주민들이 자꾸 민원을 제기해서 못 가르치고 있어요. 죄송해요”
오죽 답답했는지 하루는 남편이 한마디 했다
“자유로 가다보면 들판이 나오는데 아무도 없어 시골에 비닐하우스치고 거기서 연습하면 소리가 시끄러워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
“지금 장난해? 거기까지 우리가 어떻게 가요?”
답답한 마음에 괜스레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세상을 넓고 여기저기 문화센터도 많은데 정말 우리가 연습할 그 작은 공간하나 없단 말인가?)
“언니! 우리 연습 언제 다시 시작해요?”
“어, 금방 하게 될 거야! 걱정마 연습실 구하고 있어 잘 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한숨과 뻥만 늘어가고 있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7-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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