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뉴스 내 나이 여섯살-내가 장애인이 되다
- 날짜
- 2010-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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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속으로 들어가는 열기를 빼기위해 마취도 안하고 그냥 칼로 북북 내 몸에 그어댔고 고스란히 앉아서 보며 그 상황을 당해야하는 난 차라리 기절이라도 했으면 싶었다.
안 그래도 쓰리고 아픈 온몸을 이젠 식염수 샤워기로 샤워를 시키는데 죽은 살들을 벅벅 문질러내고 염증 생길까봐 다 닦고는 다시 마른 거즈로 닦고 약을 바르고 나니 정말 미꾸라지 소금 뿌려대듯 팔딱팔딱 뛸 지경으로 쓰리고 따가워 견딜 수가 없었다.
바들바들 사시나무 떨듯 감당할 수 없이 떠는 날보고 진정하라는 치료사에 말이 기가 막혔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내 몸이 말을 안 들어 ‘당신 같으면 진정할 수 있겠어, 이 사람아’ 하고 말하고 싶었다.
엄청난 사이즈와 양의 거즈로 둘둘 말고 칭칭 감아놓았는데 정말 내 몸에 세배는 부어버렸다. 정신은 오락가락하고 열기를 감당 못해 고열로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헤매기 시작했지만 난 단 한 순간도 죽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곳에선 내가 제일 심한 환자였는데 다들 내가 중환자실로 들어가니 조용해졌다고 한다.ㅎㅎ 남자들도 여자가 저렇게 심하게 다쳐서 왔는데 창피해서 아프다고도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지옥문이라고도 하고 도살장이라고도 하는 치료실을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식염수로 닦아내고 상처에 죽은 살 잘라내고 약 바르고 거즈 감고를 온 몸에 수도 없이하고 치료도중 패혈증이 와 다리를 절단 할 위기도 오고 링거를 꽂을 곳이 없어 허벅지에 큰 핏줄 찾다가 끊어져 한 달 반 간신히 살은 거 다시 사망신고 도장 찍을 뻔하고 갑자기 심장 멎어 또 갈 뻔하고 그렇게 난 사망과 줄다리기를 수도 없이했다.
주위에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오면 그런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그만큼 고통스러워 내뱉는 소리들이었지만 난 죽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다. 엄마와 집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울까란 생각을 하면 그런 생각은 절대 할 수가 없었기에 참고 또 참았다.
아침이 오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아침은 곧 치료와 연결되니 정말 무섭고 두려움에 이가 다 망가지도록 다닥거리며 이가 부딪치고 이를 악물고 비명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참느라 다 부숴질 정도였지만 그래도 아침이 와야 하루가 가고 그래야 아이들을 만나니 난 죽을 수 없었다.
육신은 다 타버려 너덜너덜했지만 내 영혼만큼은 타지 않았기에 절망스런 내 육신이 영혼을 지배하게 둘 수가 없었다. 만일 그때 내 몸을 다 보았다면 아마도 내 영혼은 한 순간 무너져 버렸고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갔을지도 모른다.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가죽 없는 동물이나 다름 없었을 테니까 난 지금도 감사하다. 내 영혼이 육신에게 지지 않아서 죽음이 판을 치던 그 중환자실에서 난 살아 희망을 노래하고 힘내자고하며 웃었다. 육신은 옷에 불과하다. 옷이 입는 사람보다 더 소중하진 않기 때문이다.
옷이 좀 탄 것 뿐 옷이 좀 망가진 것 뿐이지 진짜 내가 내 영혼이 망가진 것은 아니기에 난 그렇게 병원 생활 중에도 다른 사고로 수술을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입원을 해야 했지만 웃으며 지냈다. 미이라 같이 칭칭 감아 놓아 무서운데 웃기라도 하지 않으면 무서워서 안 놀아줄 거 아닌가.ㅎㅎ
그래서 우리 입원실은 어느 할머니가 천국이라고 붙여주셨다. 아이도 할머니도 우리 병실에만 오면 웃는다. 가장 험한 상태에 환자와 가장 여린 아가들이 사이좋게 웃으며 지내던 곳 난 당신이 웃으면 세상도 웃는답니다란 말을 좋아한다. 왜냐면 내가 웃으니 상대방도 웃는 것을 내가 경험해보니 너무 좋았기에….
이렇게 난 사고로 인해 얼굴부터 온몸에 화상 장애를 입게 되었고 특히 얼굴과 손과 팔 상반신이 많이 다쳤다. 치료 후 갈수록 더 해가는 후유증으로 내 손은 어느 분이 그러던데 꼭 닭발 같다고 어머 난 닭발 먹어보지도 못했는데 미안하다 내손아 닭발이란 말로 널 불러서 그래도 넌 내게 가장 멋진 손이란다.^^
얼굴도 심했지만 성형수술 안하고도 많이 좋아졌다. 그래도 나가면 사람들 시선을 따갑게 느끼는 상태다 그럼 어떤가 본다는데 이쁘게 미소나 지어주어야지 ㅋㅋ김치라고 해줄걸 그랬나.
이게 내가 장애인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사건이고 배경이다. 그렇게 힘겨운 죽음에 고비를 넘고 넘어 상상할 수 없었던 일로 난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난 지금 여섯 살이 되어간다.
아기처럼 처음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 다음엔 앉아서 몇 개월 그 다음엔 걸음마로 그렇게 몇 개월 그리고도 힘겹게 6년째 살아오면서 아직도 화상부위 중 일부는 힘들면 염증이 생겨 1~2주를 고생하고 한 움큼 씩 썩은 고름을 쏟아내며 치료를 한다. 그래도 난 한 번도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았다.
내게 주어졌던 이전에 삶이 감사해서 지금 삶이 또 다른 감사를 내게 가르쳐주어서 난 정말 감사하다. 한동안 어색하고 낯설었던 내 모습만큼이나 장애인이라는 이름표가 내게 그러했지만 난 지금 당당하게 말한다, ‘저 장애인입니다. 장애인이라는 이름은 죽음의 전쟁터에서 패전병이 아니라 진정한 승리자에게 주는 훈장이라고~~.’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7-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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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쓰리고 아픈 온몸을 이젠 식염수 샤워기로 샤워를 시키는데 죽은 살들을 벅벅 문질러내고 염증 생길까봐 다 닦고는 다시 마른 거즈로 닦고 약을 바르고 나니 정말 미꾸라지 소금 뿌려대듯 팔딱팔딱 뛸 지경으로 쓰리고 따가워 견딜 수가 없었다.
바들바들 사시나무 떨듯 감당할 수 없이 떠는 날보고 진정하라는 치료사에 말이 기가 막혔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내 몸이 말을 안 들어 ‘당신 같으면 진정할 수 있겠어, 이 사람아’ 하고 말하고 싶었다.
엄청난 사이즈와 양의 거즈로 둘둘 말고 칭칭 감아놓았는데 정말 내 몸에 세배는 부어버렸다. 정신은 오락가락하고 열기를 감당 못해 고열로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헤매기 시작했지만 난 단 한 순간도 죽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곳에선 내가 제일 심한 환자였는데 다들 내가 중환자실로 들어가니 조용해졌다고 한다.ㅎㅎ 남자들도 여자가 저렇게 심하게 다쳐서 왔는데 창피해서 아프다고도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지옥문이라고도 하고 도살장이라고도 하는 치료실을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식염수로 닦아내고 상처에 죽은 살 잘라내고 약 바르고 거즈 감고를 온 몸에 수도 없이하고 치료도중 패혈증이 와 다리를 절단 할 위기도 오고 링거를 꽂을 곳이 없어 허벅지에 큰 핏줄 찾다가 끊어져 한 달 반 간신히 살은 거 다시 사망신고 도장 찍을 뻔하고 갑자기 심장 멎어 또 갈 뻔하고 그렇게 난 사망과 줄다리기를 수도 없이했다.
주위에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오면 그런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그만큼 고통스러워 내뱉는 소리들이었지만 난 죽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다. 엄마와 집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울까란 생각을 하면 그런 생각은 절대 할 수가 없었기에 참고 또 참았다.
아침이 오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아침은 곧 치료와 연결되니 정말 무섭고 두려움에 이가 다 망가지도록 다닥거리며 이가 부딪치고 이를 악물고 비명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참느라 다 부숴질 정도였지만 그래도 아침이 와야 하루가 가고 그래야 아이들을 만나니 난 죽을 수 없었다.
육신은 다 타버려 너덜너덜했지만 내 영혼만큼은 타지 않았기에 절망스런 내 육신이 영혼을 지배하게 둘 수가 없었다. 만일 그때 내 몸을 다 보았다면 아마도 내 영혼은 한 순간 무너져 버렸고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갔을지도 모른다.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가죽 없는 동물이나 다름 없었을 테니까 난 지금도 감사하다. 내 영혼이 육신에게 지지 않아서 죽음이 판을 치던 그 중환자실에서 난 살아 희망을 노래하고 힘내자고하며 웃었다. 육신은 옷에 불과하다. 옷이 입는 사람보다 더 소중하진 않기 때문이다.
옷이 좀 탄 것 뿐 옷이 좀 망가진 것 뿐이지 진짜 내가 내 영혼이 망가진 것은 아니기에 난 그렇게 병원 생활 중에도 다른 사고로 수술을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입원을 해야 했지만 웃으며 지냈다. 미이라 같이 칭칭 감아 놓아 무서운데 웃기라도 하지 않으면 무서워서 안 놀아줄 거 아닌가.ㅎㅎ
그래서 우리 입원실은 어느 할머니가 천국이라고 붙여주셨다. 아이도 할머니도 우리 병실에만 오면 웃는다. 가장 험한 상태에 환자와 가장 여린 아가들이 사이좋게 웃으며 지내던 곳 난 당신이 웃으면 세상도 웃는답니다란 말을 좋아한다. 왜냐면 내가 웃으니 상대방도 웃는 것을 내가 경험해보니 너무 좋았기에….
이렇게 난 사고로 인해 얼굴부터 온몸에 화상 장애를 입게 되었고 특히 얼굴과 손과 팔 상반신이 많이 다쳤다. 치료 후 갈수록 더 해가는 후유증으로 내 손은 어느 분이 그러던데 꼭 닭발 같다고 어머 난 닭발 먹어보지도 못했는데 미안하다 내손아 닭발이란 말로 널 불러서 그래도 넌 내게 가장 멋진 손이란다.^^
얼굴도 심했지만 성형수술 안하고도 많이 좋아졌다. 그래도 나가면 사람들 시선을 따갑게 느끼는 상태다 그럼 어떤가 본다는데 이쁘게 미소나 지어주어야지 ㅋㅋ김치라고 해줄걸 그랬나.
이게 내가 장애인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사건이고 배경이다. 그렇게 힘겨운 죽음에 고비를 넘고 넘어 상상할 수 없었던 일로 난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난 지금 여섯 살이 되어간다.
아기처럼 처음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 다음엔 앉아서 몇 개월 그 다음엔 걸음마로 그렇게 몇 개월 그리고도 힘겹게 6년째 살아오면서 아직도 화상부위 중 일부는 힘들면 염증이 생겨 1~2주를 고생하고 한 움큼 씩 썩은 고름을 쏟아내며 치료를 한다. 그래도 난 한 번도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았다.
내게 주어졌던 이전에 삶이 감사해서 지금 삶이 또 다른 감사를 내게 가르쳐주어서 난 정말 감사하다. 한동안 어색하고 낯설었던 내 모습만큼이나 장애인이라는 이름표가 내게 그러했지만 난 지금 당당하게 말한다, ‘저 장애인입니다. 장애인이라는 이름은 죽음의 전쟁터에서 패전병이 아니라 진정한 승리자에게 주는 훈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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